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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숙빈최씨와 희빈장씨

by 하야니2 2010. 5. 19.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 손꼽길 숙빈 최씨 만큼 대단한 여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녀는 천한 무수리 소생에서 한 임금의 총희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신분 질서가 엄격한 조선에서는 대단한 일일수 밖에 없었지요.

게다가 다른 후궁도 아니고 후궁이 '빈'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는 경우는 아들을 낳았거나 가장 총애를 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드물었다고 합니다.

그 예로 인조대왕의 후궁인 귀인 조씨를 들 수 있죠.

그녀는 인조대왕의 아들을 두 명이나 출산하고 인조에게 유일한 딸을 안겨준 인물이지만 결국 종1품인 귀인에까지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는 인조대왕이 그녀의 악독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숙빈 최씨는 그 출신 성분이 오리무중에 있는 여인으로 천하디천한 무수리로 입궁을 처음했다고 하죠.

무수리란 내인들의 세숫물이나 떠나바치는 천민 출신이 여인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숙빈 최씨의 아버지는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는 모르나 그 이름은 최효원이라 하죠.

훗날 영조대왕은 신분의 콤플렉스 때문에 외조부인 최효원의 신분을 높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또다른 실록에 보면 숙빈 최씨는 숙종의 첫번째 왕후인 인경왕후의 교전비(가마를 수행하는 계집종)출신으로 인경왕후가 궁궐에 들어오자 바로 무수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숙빈 최씨가 인경왕후의 몸종이었다는 뜻이 됩니다.

숙빈최씨가 무수리 시절... 숙종은 왕후로 간택한 장옥정(장희빈)의 행태와 오만방자함에 염증을 느껴 날마다 얼굴이 반반한 궁녀들을 찾아가면서 승은을 입혔다고 합니다.

그 때 궁궐 외부를 생각없이 거닐다 밤늦은 시각에 환하게 켜진 전각과 다불어 어느 여인이 치성을 드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자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 숙종 임금이 그 전각에 들어가보니 왠 여인 하나가 작은 상에 화려한 음식들을 차려놓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숙종임금은 이를 저주의 행각으로 보고 분노를 하던 중 최씨가 "오늘이 폐비가 되신 중전 마마의 생신이시라 이렇게 준비를 했습니다." 라고 바들바들 떨면서 아뢰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숙종임금이 가슴이 찡하며 당장 그 소녀와 동침을 했다고 합니다.

날마다 숙종임금은 무수리 최씨의 전각으로 가서 동침을 하는 일이 잦아졌다고 합니다.

그 소문이 궁궐 밖에서도 파다하게 퍼졌고, 퍼진 소문이 다시 당시의 준정인 장씨의 귀에도 들어가 당장 아랫것들을 시켜 무수리 최씨를 잡아오라 이르죠.

그녀는 감히 자신의 남편과 동침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모질게 최씨를 매질했고, 숙종은 이 사실을 꿈에서 알게 되었다고 하죠.

야사에 보면 숙종임금이 곤하여 낮잠을 청하여 자고 있는데 꿈에서 황룡 한 마리가 힘없이 누워있으면서 그에게 눈물 흘리며 가로되

"지금 내가 죽어가고 있으니 어서 와서 날 좀 살려주오."라고 눈물로 호소를 했다고 합니다.

이 꿈이 필시 뭔가 사연이 있다고 생각한 숙종은 승은을 입힌 무수리 최씨가 생각났고, 아랫사람들을 시켜 그녀의 동태를 살피라 하던 중 마침 최씨가 장씨에게 붙들려 문초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숙종이 놀라고 기가 막히여 당장 중전의 전각인 교태전으로 가 중전의 행위를 만류시켰다고 합니다.

그 당시 아랫것들에게서 임금의 행차가 있다는 비보를 받은 장씨는 놀라서 고문을 중지 시키고, 큰 독에 실신한 무수리 최씨를 넣고 시치미를 떼고 있던 중 고약한 냄새가 교태전 전각을 뒤덮고 있어 뒤집어진 항아리를 열게하니 그 곳에서 피투성이로 실신한 최씨가 쓰러져 있었지요.

장씨의 행위를 기가막히고 놀라워 분노를 한 숙종은 당장 왕후인 장씨에게서 금전령을 내리고 몸이 상한 최씨를 치료케한 숙종은 그녀가 용종을 임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여 당장 종4품인 숙원으로 봉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연잉군을 생산하자 숙종은 그녀에게 정 1품인 빈의 교지를 내리고 숙빈이라 칭하게 하죠.

이래서 그녀는 참새에서 황새로 거듭나게 되었답니다.

희빈으로 강등이 된 장씨는 숙빈 최씨와 대등한 관계에 놓여지게 되죠.

그녀는 남인들을 중심으로 다시 인현왕후와 숙빈 최씨를 내치려 고심하던 중 인현왕후가 죽자 그 탓이 전부 희빈에게 쏠리게 되어 그녀가 사약을 받고 죽게 됩니다.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고 죽기 직전 숙빈은 자신과 자신의 아들 연잉군, 그리고 윗전인 인현왕후 민씨를 지키기 위해 서인의 편에 서서 남인 새력을 견제하는 탁월한 정치 감각 때문에 장씨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희빈장씨가 죽고나서 몇 년 후 병으로 세상을 뜨게 되죠.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임금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죠.

천한 무수리 내인에서 한 임금이 후궁이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무수리라면 일반 궁녀들과는 다르게 처소가 궁궐과는 아주 떨어진 곳으로 무수리가 승은을 입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 했습니다.

그녀가 그냥 숙빈의 후궁이었다면 또 다르지만 사람들이 그녀를 대단하게 본 이유중 하나가 정치적으로 식견이 뛰어났던 점에 있다고 볼 수 있죠.

조선 시대 당당했던 여성 중 한 명 숙빈 최씨.

아들은 임금이 되고, 임금인 남편을 섬기며 자신을 당당하게 지키던 여인의 한 많은 세월은 영조대왕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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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빈최씨는 최하급 무수리로써 절대 얼굴이 이쁜 사람이 아니었고 그냥 힘쓰는 무수리 였다는게 정설입니다. 손이 너무 거칠어 그손을 늘 부끄러워했다고 합니다. 일잘하게 생긴 여자아이들을 뽑아 물깃는등 힘쓰는 무수리로만 한다는 것은 다아는 사실입니다.(시중드는 무수리랑은 다르지요)

오죽하면 숙종이 밤을 보내고 숙빈최씨가 임신해서 영조를 낳은뒤 그
얼굴을 보고 " 에미를 닮았으니 몸은 튼튼하겠구나 " 라고 했겠습니까?

영조가 첫번째 결혼한 왕비에게 첫날밤 소박을 논 이유가 자기 어머니 숙빈 최씨때문이라는 얘기도 모릅니까?첫날밤 신부 손을 잡고 " 손이 정말 곱구려 "했더니 왕비가 " 험한 일을 한적이 없어서 그런가 보옵니다 "란 말을 듣고 영조가 화를 내며 "내어머니 숙빈최씨는 험한 일을 많이 하여 험한 손을 가졌구려, 나의 어머니를 욕하는 소리를 하다니..." 하고 첫날밤소박을 놓은 일은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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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검색 ssdowkdowk님의 답글입니다.